[신앙 에세이] 복음가수의 딸로 자란다는 것 – 1세대 찬양 사역자 故 민희라, 김일홍의 기억 (HoleeARK 음악이야기 1화)
1. 차창 밖 풍경에 얹어지던 어머니의 찬양
어린 시절, 제 기억의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든 찬양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끔은 그런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지만, 어린 마음에 조금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감성적인 분이셨습니다. 매번 부모님의 전국 스케쥴을 차로 함께 다녀야 했던 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불어오는 좋은 바람을 맞을 때, 들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을 때, 하늘이 유난히 맑을 때면 감탄하며 찬양을 시작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나이가 들고 남편과 함께 길을 걷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면, 하나님의 귀한 섭리와 함께 어머니의 그 찬양이 귓가에 맴돕니다. 저 역시 나지막이 그 찬양을 따라 불러보곤 합니다. 그때의 어머니 나이와 비슷해진 지금에야, 그 시절 어머니의 벅찬 감동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맑고 청아한 목소리, 그리고 통곡의 기도
많은 분들이 아직도 어머니의 청량하고 호소력 깊은 노래를 기억하고 사랑해 주십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중이 아는 목소리와 달리, 저는 집에서 홀로 울며 통곡하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더욱 깊고 무거운' 목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무대 위에서 젊은 시절의 목소리가 맑고 청량했다면, 제가 곁에서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세월과 기도가 더해져 깊은 울림과 무게감을 가진 간절한 소리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따로 발성이나 체력 관리를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새 곡을 들려주시면, 악보를 보고 몇 번 흥얼거리며 곡을 익히셨습니다. 녹음실에서도 목을 푸는 시간조차 없이 단 몇 번의 테이크로 녹음을 끝내시곤 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재능을 하늘로부터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3. 부모님, 두 사람이 만들어낸 작은 콘서트
저의 아버지, 故 김일홍 님은 단순히 작곡과 기획만 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KBS남산방송국 전속 가수로 출발하신, 어머니보다 선배 가수셨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유행을 선도하며 기타 독학으로 시작해 195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전공하시고 가수가 되셨고, 이후 연예 기획사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직접 연예서비스코너를 설립하시고 어머니를 비롯해 가수 다수 배출, 신인 가수양성, 작곡, 제작, 녹음 및 공연과 방송 섭외하는 등 전천후로 활동하셨습니다.

두 분이 가요계를 떠나 오직 복음가수의 길을 걸으셨을 때, 외부의 도움 없이 두 분만으로 사역이 가능했던 것도 아버지의 그런 역량 덕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식탁 앞에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늘 음악과 사역을 의논하셨습니다. 주로 어머니가 가사를 쓰시면 아버지가 곡을 붙이셨고, 마주 앉아 아버지는 기타로 코드를 적고 어머니는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 거실에서 열리는 두 분만의 아름답고 치열한 콘서트였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을 함께 음악을 하셨습니다.
4. 복음가수의 딸, 벅찬 감동과 외로운 어둠 사이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역자의 자녀로 자란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견디기 힘든 무게였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시골의 아주 작은 교회. 음향 시설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1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육성으로 찬양을 하시던 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찬양을 듣고 모두가 눈물을 흘리셨고, 돌아가는 길에 손을 맞잡고 감동을 나누시던 모습을 보며 어린 저 역시 형언할 수 없는 벅참과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유명한 사역자라는 사실은 저에게 '항상 바르고 신앙이 좋아야 하는 착한 딸'이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그저 예쁘지도, 살갑지도 않은 소심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어릴때는 친구들과 뛰어놀 시간도 없이 늘 부모님의 사역에 따라다녀야 했던 아이.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역을 나가시고 빈집에 혼자 남아 밤 12시, 1시가 넘도록 부모님을 기다리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캄캄한 집이 너무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서 혼자 울며 기도하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자라면서 그 외로움은 퉁명스러움과 원망으로 변하기도 했고, 부모님의 기대와 저의 꿈 사이에서 깊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찬양 사역의 유산: 남겨진 이야기
그렇게 기쁨과 감사, 외로움과 후회가 뒤섞인 긴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내게 선택권이 없다고 느꼈던 그 무섭고도 벅찼던 시간들이, 세월이 흘러 지금의 저를, 그리고 우리 부부의 음악인 'HoleeARK'를 빚어낸 가장 단단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신앙의 결이 달라 겪어야 했던 부모님과의 깊은 아픔, 그리고 왜 제가 지금 이 시대에 남편과 함께 다시 찬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노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을 이어가려 합니다.